경상북도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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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 (일제강점기)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경상북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25년부터 1944년까지의 인구 통계, 행정 구역, 역대 도지사, 사법, 경찰, 세무, 전매, 기상, 고등교육기관, 군사, 교통, 광업, 신사, 기업, 미디어, 출신 유명인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1945년 당시 경상북도에는 대구부가 있었고, 20개의 군과 울릉도가 관할 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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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달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대한 반발로 제정되어 독도가 대한민국 고유 영토임을 알리고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10월에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개최되는 행사 기간이다. - 경상북도의 역사 - 대구읍성
대구읍성은 왜구 침략에 대비해 축성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파괴된 후 석성으로 재축성되었지만, 일본인들의 상권 확장과 도시 개발을 이유로 철거되었고, 이로 인해 대구의 상권이 일본인들에게 넘어가 조선인들의 상권이 쇠퇴했다. - 일제강점기의 도 - 전라북도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의 지배 아래 놓인 전라북도 지역으로, 조선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일본인이 소수를 이루었으며, 부, 군, 면으로 구성된 행정 구역과 전주지방법원, 전주형무소 등의 사법 및 치안 기관, 그리고 전주지방전매국, 군산세무서 등의 경제 기관이 설치되어 농업, 광업, 제조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 활동과 철도, 도로, 항만을 중심으로 교통이 발달하고 일본어 신문과 라디오 방송국이 운영되었으며,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전주신사를 비롯한 여러 신사가 설치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도 - 경상남도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경상남도는 인구가 증가하고 농림수산업, 광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으며, 철도와 항만이 주요 교통 시설로 이용되었고, 부산, 마산 등지에 신사가 있었으며, 조선방송협회 방송국이 운영되었다. - 대구광역시의 역사 - 현풍군
현풍군은 신라시대부터 이어진 현풍 지역이 조선시대 현풍현을 거쳐 1895년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달성군에 편입되어 소멸되었고 현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일부이다. - 대구광역시의 역사 - 대구부 (1910년)
대구부(1910년)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에 대구 지역의 행정 구역을 지칭하며, 13개의 면으로 구성되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구부(1914년) 등으로 개편되었다.
2. 인구
1925년부터 1944년까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의 인구는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1940년에 일시적으로 감소하였으나, 1944년에는 다시 증가하여 260만 명을 넘어섰다.
1936년 현주민구조사에 따르면, 경상북도 전체 인구 2,454,275명 중 조선인이 2,402,970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일본인은 49,887명, 기타 민족은 1,418명이었다.
2. 1. 인구 변화 추이
1944년 조사에서 민족별 인구 분포는 다음과 같았다.
1945년 당시 행정 구역을 기준으로, 경상북도는 한반도 동남부 경상도 지방의 북쪽에 위치한다.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강원도, 서쪽으로는 충청북도·전라북도, 남쪽으로는 경상남도와 인접해 있다.
3. 행정 구역
3. 1. 부 (府)
대구부
3. 2. 군 (郡)
3. 3. 섬
울릉도4. 역대 도지사
武永 憲樹|다케나가 가즈키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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